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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화),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다 19세의 나이로 산화한 호국영웅 고(故) 최백인 일병이 가족의 품으로 귀환했다.ㅇ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007년 4월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운주산 일대에서 육군 제50보병사단과 함께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6사단 7연대 소속의 고 최백인 일병으로 확인했다.ㅇ고인은 올해 국유단이 첫 번째로 신원을 확인한 호국영웅이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국군 전사자는 총 269명으로 늘었다.
19년 전 국유단과 50사단 장병들은 6·25전쟁 당시 개인호(個人壕)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고인의 유해와 유품을 수습했다.ㅇ당시 50사단 장병들이 발굴현장에서 기초발굴을 하던 중 고인의 넙다리뼈 일부를 발견했다. 이어 국유단 전문 발굴병력이 주변을 확장하면서 정밀발굴을 진행한 결과, 산발적으로 흩어진 고인의 유해 일부를 수습할 수 있었다. ㅇ또한, 유해의 지근거리에서 국군의 전투복, 전투화 등 19점의 유품을 식별했다. 이를 통해 해당 유해가 아군의 유해임을 일차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품만으로는 신원을 특정하기는 어려웠다.
이번 고인의 신원확인은 오빠를 찾기 위해 시료채취에 참여했던 여동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ㅇ2008년, 국유단은 고인의 유해로부터 유전자 시료 채취를 시도하였으나, 당시 유전자 기술로는 유의미한 유전자 분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고인의 유전자와 비교할 가족이나 친인척의 유전자 시료가 당시에는 확보되지 않아 신원확인을 할 수 없었다.ㅇ2021년 10월, 고인의 유일한 생존 혈육인 여동생 최길자 씨(1942년생, 당시 79세)가 전주시보건소에서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하며 신원확인의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다. 유전자 추출 및 분석 기술의 발달로 과거에는 확인이 어려웠던 유해에서도 유전 정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유가족의 시료와 대조한 끝에 마침내 가족관계를 확정했다.
고인